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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서 이야기/단어와 문장20

[문장배달]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- 톰 라비 데이트는 어떤가. 우리 책중독자들은 누군가에게 구애하는 걸 완전히 단념해버릴 수 있다. 그건 물론, 그러려면 성가시게 몸을 이끌고 나가서 데이트 상대와 실제로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. 이는 식사, 영화, 콘서트일, 미술관, 미니골프, 그리고 온갖 종류의 다른 활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. 이 모든 일들이 우리 책중독자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어떤 일들은 돈이 들기도 한다. 우리 책중독자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데이트란 이런 것이다. 두 사람이 무릎을 비추는 전등이 딸린 소파 두 개를 약간 떨어뜨려놓은 채로 앉아서 각자 다른 책을 읽는 것.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우리 책중독자들의 이런 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. 책방에서 데이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, 그러면 책이 아니라 우리 책중독자들의 행동이 대.. 2011. 11. 25.
[단어사전] 오소소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왔습니다……. 웬일인지 여자는 그 말에 들린 듯 며칠간 시름겨웠다. 반발하고 부정하고 싶은 가운데도 한편으로 제 마음 공명하는 걸 느꼈다. 그녀는 그 말에 위무를 받고 있었고 당혹스러웠다. 늙은이는, 혹은 그 세대는 그 말을 허위나 엄살이 아닌,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. 그녀는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오 의원들이 하는 말이 진의를 백번 양보한다 해도 죽은 자들을 밑천 삼아 벌이는 말잔치가 아닐가 의심했다. 끔직한 광주도 자신과 같은 입을 통해 반복될 것이다. 그래서 어느 날에는 죽음 한가운데에서 살아왔다는 이 진실도 매가리도 없는 언사가 천지간에 꽉 찰 것이다. 그녀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. ― 전성태, 「국화를 안고」 오소소 【부사】 ① 깨·좁쌀 따위의 아주 잔 물건이.. 2011. 11. 24.
[단어사전] 번하다 여자는 거실 창가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셨다. 찻잔에 입바람을 불때마다 어둠이, 여자의 등 뒤에 부리를 둔 어슴푸레한 기운이 소매에 앉은 분필 가루처럼 조금씩 불려나가는 것 같았다. 창은 번했다. 사택 앞마당에 선 가로등 불빛 주변에 성긴 눈발이 나부꼈다. 학교 운동장이며 민가 지붕들이 윤곽을 지우며 눈 속에 묻혀 있었다. 만원이 그려놓은 밤처럼 풍경은 비현실적을 보였다. 두렵지만 않다면 그녀는 이런 비현실감도 좋았다. 그녀는 국화차를 한 모금 천천히 넘겼다. 차는 혀끝에서 식으며 생콩처럼 비릿했다. 차를 마신 것은 산책 전에 물을 마셔두는 오랜 습관이었다.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라 그녀는 날이 더 밝기를 기다리며 지난밤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찬장에서 발견한 국화차를 우렸다. 지난가을에 절에서 얻은 차였다.. 2011. 11. 24.
[단어사전] 머츰하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- 문태준, 「누가 울고 간다」, 『가재미』, 문학과지성사, 2006년 머츰하다 머츰―하다[형용사][여 불규칙 활용]눈이나 비 따위가 잠시 그치어 뜸하다. ?예문 오랫동안 계속 내리던 비가 머츰하다. 문태준 시인의 라는 시입니다. 공감각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좋아서 좋은 글 카테고리에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. 생소한 단어가 하나 보이지요? 머츰하다, 너무 아름다운 .. 2011. 11. 2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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